
즐거운 주말이 시작되는 토요일이었지만 잠을 설쳐서 너무도 힘들었다. 저탄고지 식단을 하다 보니 키토플루 증상이 왔는지, 머리는 아프고 몸을 쥐어짜는 느낌이 들어서 새벽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운전해서 병원도 가야 했고, 약속이 있었지만 네댓 시간 정도밖에 못 자니 나갈 엄두가 안 났다. 잠을 깨고 나가겠다는 의지로 침대에서 눈을 감은 채로 있었지만 효과는 없어서 우선 병원 예약은 취소했다. 그 후 각종 비타민과 영양제를 챙겨 먹고 침대에서 눈 감은 채로 한두 시간 더 있으니 상태가 괜찮아졌는데 그땐 이미 한 시가 넘었기에 주말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렸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법. 단풍과 은행이 물든 지는 오래되었고 이제 끝자락에 다다른 느낌이 들어서 더 늦기 전에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여자친구와 북한산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었는데, 내가 피곤해서 자는 동안 이미 지하철을 타고 나를 보고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북한산은 물 건너갔고, 차로 마중 갈 위치와 나들이 가기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니 대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종종 가족과 대공원을 갔었는데, 가을에 단풍, 은행 그리고 초목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 바로 정했다.
대공원역에서 여자친구를 태우고 대공원으로 들어갔는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그 넓은 주차장에 자리가 거의 없었다. 가장 끝부분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겨우 대고 풍경을 즐기러 나갔다.
명장이라 쓰여 있는 빵집에서 누네띠네와 비슷한 파이를 고르고, 집에서 사 온 귤을 챙겨서 대공원 주변을 거닐었다. 나와 여자친구는 체력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대공원까지 걸어가서 동물을 보고 올 생각은 없었다. 조금 더 어렸다면 간 김에 다 둘러보고 왔겠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속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풍경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다. 예전에는 애기들이 눈에 안 들어왔는데, 지나가는 애기들이 참 예쁘게 보였다. 결혼하고 아이 키울 나이가 된 느낌...
길거리에 파는 음식도 오랜만에 먹었는데, 여자친구가 구운 가래떡을 좋아한대서 사 먹어 봤다. 이전에 일본 여행 갔을 때 산 위에서 먹었던 떡꼬치를 떠올려 보라며, 그거랑 비슷하다고 강력 추천을 해서 먹어봤지만 내가 생각한 맛만 났다. 여자친구도 약간은 실망했는지 여기 건 별로라고 ㅋㅋ 여행 가서 먹은 떡꼬치의 맛을 어떻게 냈는지 궁금해지기만 했다.
약 한 시간 정도 돌아다니다 피곤해진 우리는 그만큼의 시간을 차에서 낮잠을 자며 보낸 후 인덕원 근처의 조개전골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양이 많아서 별도 칼국수 사리 추가 없이도 충분했고 같이 나왔던 녹인 치즈가 킥이었다. 무난하게 먹고 나왔는데, 바로 윗집에 갑오징어를 파는 가게가 있어서 저길 갈걸 그랬다며 아쉬워했다. 다음엔 좀 더 신중히 골라야겠다ㅎㅎ
마지막으로는 옛날 다방처럼 느껴지는 카페에 들어가서 딸기주스랑 차를 시키고 담소를 나눴다. 다음주에 여자친구가 싱가포르로 일주일 동안 연수를 가서 평일에는 못볼 거 같으니 오늘 내일은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겠다.